교화(敎化)에 대하여
윤팔중(1977). 교화와 교육. 배영사.
Snook(1972)의 'Indoctrination and Education'을 완역한 것이다.
개념분석 방법을 이용하여 교화라는 말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풀어쓰고 있다.
처음에 집중하여 읽었지만 지식과 노력부족으로 인하여 완독하지 못했다.
윤팔중(1976). 교육방법으로서의 교화의 성격과 문제. 교육학연구 14(3).을 읽다.
교수와 훈련은 종류의 차이이며 질의 차이가 아니다.(149)
훈련과 교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교수가 반드시 어떤 종류의 대화를 포함하는 정도에 어울리게 그것은 습관의 조장과 행동방식의 변화에 보다는 지식과 신념의 획득에 보다 더 밀접히 연결되는 가르치기의 한가지 대화이다.
그러나 훈련은 이와 정반대이다. 교수는 이해에의 요구에 밀착되어 있어서 이해없는 훈련은 가능하지만 이해를 동반하지 않고 교수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교수는 언제나 진과 위의 문제를 포함하지만 훈련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가르치기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추구이다. 교수가 가르치기의 중핵이기 때문에 진리의 추구는 가르치는 활동의 중핵이다.(149)
합리적인 대화는, 아동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도울지도 모르는 여러 사실들을 그 아동앞에 제시하는데에 활용되는 대화이며, 이전에는 미처 그것들에 관해서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던 아동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관한 여러 측면을 그 아동에게 보여 줄려고 애쓰는 과정에 동원되는 대화이다. 그리고 아동의 지능의 정도가 적절히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논리와 언어의 요점을 그 아동을 위하여 명료하게 해주기 위한 대화이다. 그러나 교화의 과정에 쓰이는 대화는 상당히 독특하고 또 미리 결정된 신념들을 고정시키기 위하여만 채용된다. 탐구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상반되는 증거나 문제거리가 되는 반대는 묵살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는 교화되어지는 과정이란 실상 교화를 성공시키는 데에 없어도 되는 것이다. 이 점이 교수의 과정과 딴판으로 다르다.(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