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기술교육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

기술교육 2023. 3. 7. 17:54

중1, 기술, 첫만남.

5~6교시 연속수업이었다.

4층 1-1반 교실에 들어가니 5줄 시험 대형으로 23명(여 11, 남 12)의 꼬맹이들이 앉아 있었다. 첫만남이었다. 첫, 만남.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일부는 웃었다. 무늬만 중학생이지 아직은 초등학생이었다.

 

"(쿨하게) 안녕, 기술선생님이야"

"(모두가) 안녕하세요."

 

난 빈손으로 교실에 왔다. 이들을 데리고 1층 기술실로 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빨간책(기술가정 교과서) 들어볼래?"

"필통은?"

"크롬북을 번호대로 나눠줄테니 나와서 가져가세요."

 

"자 그럼 기술실로 갈까?"

"크롬북을 제일 아래 놓고. 그 위에 빨간책. 그리고 필통."

"두 손으로 크롬북을 들었으면 이제 복도로 나가볼까?"

 

"여학생은 선생님 오른손에 줄을 서고, 남학생은 왼손에"

"그럼 갈까?"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소풍가듯 이들을 인솔하여 1층 기술실로 내려갔다.

'참새', '짹짹'

만약 이런 구호만 있었다면 나는 영락 없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험악하게 생긴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라니...

 


 

1층 기술실 복도에 내려가니 복도 끝에 위치한 기술실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서성이고 계셨다. 난 어제 학교 메신저로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공개하겠다고 용감하게 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학생들이 기술실로 들어가니 문 앞에 서 계셨던 교장 선생님께서 웃으면서 학생들을 반겨주셨다. 교실에 들어온 학생들이 모둠 책상 앞에서 머뭇거렸다. 일단 앉고 싶은대로 앉으라고 했다. 삼삼오오 친한 친구끼리 모여 앉았다. 마지막에 서성이는 학생이 있었다. 아직 친구를 만들지 못한 학생이었다. 수줍어보였다. 그 학생의 자리를 빨리 지정해주었다. 모두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 칠판 앞에 섰다. 그 사이 교감 선생님과 신규 선생님 한 분이 기술실로 들어오셨다.

 

"혹시 여기 교실 이름을 아는 사람 있나요? 다섯 글자인데"

열서너명이 손을 들었다. 손든 학생 중 씩씩한 남학생에게 물었다.

"기술교과실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학생 손들어보세요."

"와우 관찰력이 좋은 학생들이네. 교실문에 붙어 있었죠? 박수 한번 쳐주세요."

 

박수를 유도하니 전체 학생뿐만 아니라 세 분 선생님도 함께 쳐주셨다. 분위기가 금새 활기차졌다.

 

 

"선생님 이름은~"

내가 이름을 칠판에 쓰려고 하니 일부 학생이 내 이름을 말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서 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시간표에서 봤다는 것이었다. 기특한 학생이었다. 준비성이 높은 학생이었다. 내 소개를 간단히 하고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물었다. 초등학교 때 기술 과목을 배우지 않아서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실과를 언급하며 실과보다 더 넓고 깊게 배울거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두 손을 들어 흔들면서 기술 시간에 손을 많이 사용할거라 강조했다. 칠판에 이미 붙여놓은 '손은 제2의 뇌이다' 카드케이스를 높이 들어 보여주며 손을 많이 쓰면 뇌가 똑똑해진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끄덕이고 일부 학생은 갸우뚱했다. 천천히 알게될 것이라고 운만 띄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여러분이 받은 수업 규칙 뒷면을 볼까요? 뒷면 절반은 비어있죠? 그곳에 자기 소개를 쓸 거에요. 이름, 좋아하는 것, MBTI 등 뭐든 좋아요. 다 쓰고나서 20초 동안 짝에게 설명할거에요."

 

학생들이 종이 뒷면에 자기 소개를 썼다. 작은 글씨로 깔끔하게 쓰는 여학생이 있는 반면에 30포인트 되는 크기로 큼직하게 날려 쓰는 남학생도 있었다. 학생 책상을 돌며 잘 쓴 학생에게는 큰 소리로 칭찬하고, 날려 쓰는 학생에게는 인쇄된 글씨 크기처럼 따라써보라고 했다. 학생에게 준 3분 시간을 입으로 알리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렸다. 모든 학생이 다 썼음을 확인하고 나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몸 돌려서 선생님 볼까?"

10초 정도 아무말 안하고 학생들을 스캔하니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빽빽하게 너무 잘 썼어요. 이제 쓴 것을 옆에 있는 짝에게 설명할거에요. 뭐한다고요?"

"(다수의 학생들이) 옆에 있는 짝한테 설명요."

"네, 맞아요. 옆짝에게 설명할거에요. 설명하기 전에 짝에게 설명하는 방법을 선생님이 알려줄거에요."

 

 

짝에게 설명하기 카드케이스를 떼서 전체 학생이 보도록 번쩍 들었다. 그리곤 1번부터 4번까지 한 단계씩 끊어서 큰 소리로 읽혔다.

 

"그럼 첫 번째 단계 해볼까? 자 짝을 보고 45도로 몸 돌리세요."

 

마주보는 학생, 의자에 앉아서 뱅글 도는 학생, 장난친다고 서로 등지고 앉는 학생 등 다양했다. 교사인 나는 이 단계가 너무나 명확한데 학생들은 아니었다. 무슨 말인지 일부만 알아들었다. 이걸 설명하면 더 길어지겠다 싶어서 내가 학생들이 있는 중간 모둠 책상으로 갔다. 학생 한 명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잠시 선생님이 앉겠다고 했다. 전체 학생을 내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했다. 카드케이스를 내가 앉은 모둠 책상 가운데에 놓고 단계를 끊어서 시범을 보이며 '짝에게 설명하기'를 설명했다. 내가 내 소개를 옆에 앉은 학생에게 하니, 옆에 앉은 학생은 긴장해 있고, 저 뒤에 서 있는 학생이 '아~'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이때다 싶어서 반응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와~ 저 뒤에 있는 학생이 선생님이 설명하니 반응을 해주네. 여러분 들었나요? 선생님이 반응하는 방법도 알려줄께요."

"엥? 반응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럼~ 저기 화이트보드 한 번 볼래?"

그렇게 반응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반응하는 5가지 방법을 따라하게 하고, 자기만의 반응하는 방법을 만들어보라고 하니 엄지척으로 쌍따봉을 만드는 학생도 있고, 일어나서 엉덩이 춤을 추는 학생도 있고, 소심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학생도 있었다. 자기만의 반응 방법을 연습시키고 두 명의 학생에게 자기만의 반응 방법을 보여달라고 했다. 눈을 크게 뜨고 '오~'라고 반응했다. 감정이 풍부했다. 또 다른 학생은 엄지척을 하면서 무언의 반응을 선보였다. 긴장하지 않고 발표하는 학생들이 대견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니 학생들이 함께 박수를 쳤다. 교실 끝 모서리에서 참관하는 선생님들도 함께 쳤다.

 

"그럼 짝에게 나를 소개해볼까? 어떻게 한다고 했지? 몸 돌리고, 책 넘기고, 짚어가며 설명하고, 듣고 나선 반응하고. 알죠? 그럼 시작"

전체 학생들이 옆짝에게 몸을 돌려서 배운대로 설명할 종이를 넘겼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설명했다. 그렇게 학생들이 설명하는 것을 돌아다니며 들으니 어느새 마침종이 울렸다. 뭘 한 것도 없는데 45분이 쓰윽 지나간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쉬라고 말하곤 복도로 나가신 교장, 교감, 신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며 이렇게 해놓으면 다른 수업 시간에도 좋을 것이라며 격려해주셨다. 다행이었다.

 

 


 

기술실에 들어가서 호흡을 가다듬으니 여학생 서너명이 무리지어 나에게 왔다. 한 여학생이 교과서 표지를 나에게 내밀면서,

 

"선생님 표지에 선생님이 있어요."

 

"엥? 선생님이?"

무슨 말인가 싶어 교과서를 봤더니 이런. 진짜 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봤지? 선생님이 이런 사람이야. 교과서 표지 모델이라고. 그것도 센터야."

어깨에 힘을 주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학생들을 쳐다보니 깔깔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첫 수업, 꼼꼼하게 안내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내 노력이 조금은 학생들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아빠같은 나에게 와서 관심을 보이니 올해 중1인 우리 딸이 생각나기도 했다. 딸을 교육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면 학생들과 웃을 날이 많을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